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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깨달음 그리고 지혜2(레스터레븐슨)
    구매한 서적 내용 정리 2024. 3. 5. 23:51
    자신이 무엇인지를 깨닫는 것은 자신이 아닌 것을 내려놓는 것이고 그것이 성장이다.

    자신이 무엇인지를 깨달을 때마다 자신이 아닌 것을 내려놔야 한다.

     

     

    모든 사람이 참자아를 찾고 있다. 다만 그것을 다른 이름으로 부른다. 

    참자아라고 하는 것은 무엇인가. 나라고 하는것은 무엇인가

     

     

    저는 요새 금강경책 반야심경책 해석한 책들도 읽고 있습니다.

    깨달음이 잠시 왔다 지나간것 같은데 그때 좀 적어둘걸 그랬나봐요.  이 저자를 제가 굉장히 좋아하는데 좋아하는 이유는 글을 잘쓰기도 하지만, 이사람의 방식이 불교의 법과 참 닮아있다는 생각이 들어서인지 더 마음에 와닿고 선호가 가는 것  같습니다. 최근에 읽은 두권의 서적의 방식과 저자가 흘러가는 글의 방식이 비슷하여 참 신기하다 생각했습니다.

     

    우리는 진짜로 육체라고 생각하나요? 저도 그런줄 알았지만, 저희는 육체가 아니라고 저자는 말하네요. 나는 몸이 아니고 절대 참자아이다. 나는 무한하다. 이런식으로 말이죠. 그러나 금강경도 어떻게 보니 그런 느낌이더군요.

    우리는 보여지는 모든 것 냄새 향기 촉각 미각 후각 등 모든 보여지는 느껴지는 감각에만 신경을 쓰고 있습니다. 그것이 왜 그런걸까 저자의 생각대로 생각해보니 "아 우리는 육체라고 생각하고 있구나. 였던 것이었습니다."

    불교에서 말하기를, 모든 세상도 전부 허상이고, 그저 꿈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 허상을 쫓으며 살고 있어요.

    좀 더 왜 아름다워 보이지 않았을까, 혹은 명품 좋은집 좋은 차 좋은 옷 모든 좋은 것들에 자신을 꾸미며 살고 있습니다. 

    이저자 말고 이세상의 시나리오에 사람들이 걸려서 살고 있다. 라고 하는 바딤젤란드의 글도 읽었는데 마치 정말 그런것 같더군요.

     

    나는 진짜 누구지 내가 누구일까

     

    아니 나는 진짜 무엇인지에 대해서 생각하지 못하게끔 계속 세상에 휘둘리며 살다가 가게끔 말이죠. 

    당신은 고작 육체가 아닙니다. 무한한 절대 그 자체이죠. 제가 생각했습니다.

    딸기는 딸기야 포도는 포도야 라고 하지요.

     

     

    이것은 빛이나는 포도입니다. 그래요 우리는 신과 떨어져있지 않습니다. 모든것에서 신을 발견할 수 있죠. 우리 자신이 신과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어느 저자가 그러더군요. "당신은 신을 믿습니까?" 라는 질문에 "나는 신을 압니다." 라고 대답한것이었습니다.

    그글을 읽었을때는 신에 대한 신앙심이 없나? 생각했지만, 지금와서 보니 그뜻이 아니더군요.

    우리는 딸기를 믿습니까? 당신은 딸기를 믿나요?

    딸기 딸기신앙심? 아니 딸기를 알지.

    아니 우리는 딸기가 무엇인지 안다.
    딸기를 믿는게 아니라 우리는 아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신을 믿는다고 이야기한다.

    신을 믿다와 신을 안다 어느 쪽이 더 신과 가깝게 느껴지는가?


    우리는 딸기 케이크를 안다.

    딸기 케이크를 보자.
    편의점에 파는 딸기조각케잌 딸기 빵 딸기액상으로 0.02%가 들어가 있고, 이것 저것 첨가물이 들어가 있는데..
    어 뭐야 0.02밖에 없는데 왜 딸기케이크지? 그럼 이제 이거 "레몬" 케이크라고 불러야겠네.

    라고 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대기업 케이크 유명한 딸기 케이크 생딸기가 많이 가득 들어가 있다. 대전의 oo당 케이크

    어 딸기 짱많아!!!! 이게 딸기가 많으니까 이제 이거 "포도케이크"라고 불러야지 ㅎㅎ 라고

    하는 사람도 없다.


    0.02%나 생딸기 가득한 케이크나 딸기가 들어가면
    딸기 케이크라고 한다.

    그걸 보고 딸기를 믿냐 하는사람은 없다.
    딸기 케이크를 아는 사람만 있지.

     

    그러면 딸기가 있음을 믿습니다가 아닌 것처럼 우리는
    신을 압니다 라고 해야 하는 게 맞지 않을까.?

     

    꿈 그것은 이세계를말한다.우리는 꿈을 꾸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신이 꾸는 꿈인것인가.

     

     

    이 이야기를 하는 것은 모든 것은 신이 보는 꿈이다 라고 하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즉 나 너 우리 모두다 신이라는 것이죠. 근데 누군가는 자신이 신이 꾸는 꿈인줄 알고 살아가지만, 대다수는 다 다른놈이야 다른사람이야 나는 인간이야 라고 생각하고 살아갑니다. 그러니 무언가 더 힘든것이라고 하는 것이죠. 육체가 아닌데 육체와 세상의 보여지는 모든 것에 집착하고

     

    "진짜 내가 누구인지를 모르는 것이죠."

     

    즉 우리는 유한한 인간의 육체가 아닌 절대라고 하는 존재 인 것입니다.

    저자가 그래서 참자아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는데요

     

    모든 이의 몸에 아니 몸이 아닌 신이 라고 한다면, 누군가의 깨어남의 수준이 0.02%들어간 딸기액상과즙도 =딸기라고 하는 것처럼 100%딸기로 만든 케이크도 딸기 케이크라고 하는 것처럼 당신도 나도 우리 모두다 저자도 무한인 절대의 존재라는 것이죠. 신이 담긴 양은 똑같으나 깨어남 의식하고 자각하는 양의 문제가

    자신이 육체라고 생각하게 되고 고통을 겪는 나라고 느끼게 되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즉 무한한 신이다 라고 하는게 답이 아닌가 싶기도

    당신은 나는 우주입니다. 무한입니다. 신이 꾸는 꿈이라면 우리는 무한한 것이 원래의 진정한 나 이죠. 유한한 육체와 마음 정신 에고가 아닙니다.

    ,

     

    책 내용 -
    신은 모든 것이고, 신은 완벽하다. 그러므로 우리가 완벽하지 않다고 보는 모든 것은 우리 안에 있다.
    물질을 쫓는 의식 속에서는 신(참자아)가 없다.
    자기 안에서 신을 보기 전까지는 세상에서 신을 볼 수 없다.

    분리를 본다면 참자아를 보지 않고 있는 것이다.

    세상이 실재처럼 느껴질 때, 세상은 무겁고 참자아가 실제처럼 느껴질때, 세상은 가볍다.

    심신과의 그릇된 동일시가 사라지면 우리의 진정한 정체인 참자아가 나타난다.

    우리는 지금 참자아이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오로지 우리가 아닌 것들을 놓아 보내는 것이다. 

    참자아가 신이다. 신(참자아)는 무한히 개인적이며 개인적으로 무한하다.
    인간이 아무리 깊은 문제 속으로 빠져들더라도, 신은 얼마든지 그를 건져내 줄 수 있다.
    신(참자아) 무엇이든지 즉석에서 물질화 할 수 이다.
    신인 만유란 자잘한 온갖 것들이 아니며, 그것은 자잘한 온갖 것들 배후의 하나뿐인 동일한 본질이다.

    사람들은 흔히 신(GOD)와 좋은것(GOOD)을 동의어로 사용한다. 모든 사람이 좋은 것을 원하므로 그들은 신을 좋은것으로 만든다. 신은 좋은 것과 나쁜 것 너머에 있다. 하지만 좋은 것은 우리를 신께로 이끌어준다.

    실제로는, 오로지 신(참자아) 밖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신이라 불리는 외부의 존재 같은 것은 없다. 신은 존재한다. 그러나 그것은 각자의 내면의 있음이다.

    인간의 불안정함은 인간이라고 느끼고 이세상을 현실로 바라보고 외부의 감각을 실제라고 여기며 외부의 세계를 현실이라고 생각한 것이기에 결국 자기 자신의 생각이 자신을 고통을 겪게 한다.

    인간은 실은 몸이 아니며 마음도 정신도 영혼도 아니라고 한다. 그러면 무엇인가? 나라고 하는 것이 실제로 존재하는 것도 허구라는 이야기인가? 우리는 우리가 누구인지 알아야한다. 무한한 신이라면, 자기 자신을 고통을 겪게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불안함 불안정 걱정에 휘둘리는 이유는 우리가 모르게 (바딤젤란드_시나리오이야기) 외부의 시나리오의 갈고리에 엮여서 휘둘린다고 표현하는 그러한 외부의 매체에 우리가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 아닌가. 아니 실제로 우리는 육체가 아닌 몸이 아닌 무한한 존재라면 그어떠한 고통역시 존재하지 않으며, 이 세상이라 불리는 허구또한 고통을 줄 수 없는것이 사실이 아닌가. 당신은 실로 무한한 존재인데, 고통을 겪는다는 사실이 그것이 정말로 사실이라고 생각하고 느끼는가?

     

    당신은 세상을 다시 봐야하며, 자기 자신을 다시 돌아봐야 할 지도 모른다. 보여지는 것의 허구성에 우리는 낚여있는지도 모른다. 자신을 제대로 보지도 못하는 가짜의 시각으로 스스로를 세계를 세상을 바라보고 있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신은 완벽하고 무한하다. 그런데 당신이 무한하지 않다고? 나는 그이야기가 이상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우리는 보여지는 느껴지는 육체의 고통 즐거움에 사로잡혀 있는지도 모른다. 왜냐 우리는 육체가 아닌데 스스로가 육체가 전부 세상이 진짜야 라고 느끼고 스스로가 꿈을 꾸는지 조차 모른체로 이것이 현실이야라고 자각한다고 착각하고 낚이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아이의 시절의 시각은 순수하고 사실적이며 이상하지 않나? 라고 아이는 의식하고 생각하지만, 아이의 시절에 또한 이것은 사실이 아니란다. 네가 아는것은 틀린것이야 라고 지속적인 이야기를 듣는 그 순간부터 아이의 시각은 어른의 시각에 하나가 되어 그 사실을 실제라고 느끼고 우리는 본인의 실제로 봐야하는 시각을 외면하고 착각하고 가짜의 현실의 시각에 휘둘리게 되는 것이다.

     

    내가 이 세계가 이상하다고 생각한 것은 사람들은 반드시 잠을 자야한다고 하는 것이기때문이다. 그것은 정말 이상하다고 밖에 볼 수가 없다. 이 이상한 세계에 존재하기 위해서는 모두다 잠을 자야한다는 것이다.

     

     

    잠을자야 한다고 왜?

    죽으니까!

     

    뭐가 죽는데 

    육체가 죽으니까!

    아니 모든 동물조차 잠을잔다고????

    육체의 원동력(움직임)을 위해서 잠을(육체를) 쉬어야(자야) 한다는 것이다.

     

    잘 생각해보자 80살을 산 ooo씨 40년간 가까이 잠을 잤으니

    실제로는 40년정도가 이 꿈의 세계에서 활동한 셈이다.

    동물도 반년이상을 잔다. 아니 고양이는 하루의 반을 잔다는데? 12시간을 잔다고? 아니 그러면 고양이는 이세계에 얼만큼 깨어있는거니?

    즉 인간은 육체를 위해서 잠을 자야한다는 것이다.

    왜? 육체가 움직이게 하기 위해서 40년을 자고 40년을 ? 

     

    자 여기서 우리는 생각할 수 있다.

    육체는 그냥 우리가 누구인지를 까먹게 만들게 하는 행위를 하고는 한다.

    (예시_ 배가 아프면 배에 집중을 하게되어 배 안아파야해 라고 한다. 배가 고프면 배가 고프니 먹어야한다.) 즉 자신이 육체임을 지속적으로 자각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우리는 육체가 아닌 무한한 '나' 인데 말이다.

    에너지를 한 쪽으로 몰아서 집중을 시키게 하는 것이다. '배' 그리고 '육체' 라고 하는 것에 말이다.

     

    잔다는것은 무엇인가

    자 당신은 잠을 자고 있는동안은

    소변을 신경쓰지 않고 잠을 잔다. 약 7-8시간 동안 당신은 소변이 마린다는 생각을 하지를 못한다. 하지만 평소에 예민한 당신은 2시간 혹은 3시간마다 화장실이 마릴수도 있다.

    그러나 자는 동안(=당신의 몸을 의식하지 않음) 소변이 마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즉 당신은 신경쓰지 않고 있다.=(의식하지 않다)

    자는 동안 당신의 !! 몸!! 이라고 하는 것을 말이다.

     

    그럼 자는동안 당신의 몸은 화장실 소변 생각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배고픔도없다.

    아니 누가 주체인것이지? 하지만 사람이 많거나

    예민한 깨어있다(육체가 깨어서 활동하다) 일때는

    배변활동이 원활하다.(몸을 의식한다)

     

    자 여기서 알 수 있듯이***

    우리는 신경쓰지 않으면(육체를 의식하지 않으면)

    배고프지도 아프지도 않고 마리지도 않는다는 것이다.

    누구야 의식하는 너는?

     

     


    책내용-

    신은 곧 이세상이다. 우리가 보는 그런 모습이 아닌, 있는 그대로의 이세상 말이다.
    신 진실 참자아는 변하지 않는다. 신이 변화를 알았다면 불변하지 않았을 것이다. 신 안에는 아무런 움직임도 작용도 없다. 
    신은 우리가 보는 것과 같은 이 세상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른다. 신은 단지 세상의 배후에 있는 불변의 있음일 뿐이다.
    모든 사람은 삶의 매 순간 자신의 참자아를 경험한다.


    모든 문제의 대한 유일한 답은 그대의 참자아를 아는 것이다. 온전히 참자아로서 있지 않으면 온전한 만족은 결코 누리지 못할 것이다. 자신의 참자아를 발견하는 것이 당신이 이 세상에 온 이유다. 모든 사람이 모든 행위 속에서 자신의 참자아를 찾아 헤매고 있다. 

    궁극의 행복은 참자아이다. 그 밖의 모든 행복은 그저 참자아의 한 귀퉁이일 뿐이다.
    존재하는 유일한 기쁨은 참자아의 기쁨이라는 사실을 알고 나면, 당신은 이전처럼 그것을 에둘러 찔끔찔끔 가지지 않고 직접, 통째로 가진다.

    당신의 참자아를 알 필요가 있는 유일한 사람은 당신 자신이다.

    지금 이 순간 참자아와 하나가 된다면, 당신은 무한하다. 진정으로 있는 당신의 부분, 곧 당신의 있음은 영원하다. 그것이 진정 당신인 '나'이다.



    무한한 있음인 '나'가 몸인 것처럼 느낄 떄, 그것은 무한한 있음이 자신이 몸인 것처럼 느끼는 것을 상상하고 있는 것이다. 참자아가 진짜처럼 느껴질 때는 몸은 진짜처럼 느껴지지 않고, 그 반대로도 그렇다.

    몸과 동일시해보라. 그러면 몸의 극단적 한계가 당신의 것이 된다. 참자아와 동일시해보라. 그러면 당신은 모든 것이고, 모든 앎이며, 무한한 권능이다. 

    한정된 몸과의 동일시를 놓아 보내기만 하면 지금 당장 무엇이든지 물질화하지 못할 사람은 없다.

    참자아를 발견하고 나면 몸과 마음은 나의 하인임을 깨닫게 된다.


    '나'라고 말할 때마다 그것은 곧 우주의 모든것이요, 우주의 모든 권능이다. 거기에다 무엇을 덧붙일 때마다 당신은 그것을 한계 속으로 끌어내린다.

    완벽성을 보고 있을 때, 당신은 상대방을 진정 있는 그대로 보는 것이다. 그것이 진짜다 - 완벽한 참자아다.

    단지 무한한 있음과 동일시하는 당신과 한계에 갇힌 존재와 동일시하는 당신이 있을 뿐이다.

    그저 알아차리기만 하면, 당신은 당신의 참자아로서 있게 된다. 그저 있기만 하면, 당신은 당신의 참자아로서 있게 된다.

    우리 자신인 이 무한하고 찬연한 있음은 절대적으로 완벽하므로 결코 변할 수 없다. 그것은 언제나 거기에 있다.

    모든 스승들 중에 가장 위대한 스승은 당신의 참자아이다. 모든 스승들 중에서 가장 위대한 스승은 당신의 참자아이다.

    온저히 보일 때까지 당신의 참자아를 보라. 모든 있음은 신이다. 당신의 참자아이다.


    참자아 안에서는 가지는 자도, 가짐도, 가질 대상도 없다. 행위자도, 행위도, 행해지는 대상도 없다. 아는 자도 앎도, 알려지는 대상도 없다. 거기에는 오로지 있음, 모든 있음으로서 있음만이 있다.

    신은 무엇으로 있는 것이 아니라 있음이다. 신은 무엇을 의식하는 것이 아니라 의식이다 신은 무엇을 즐기지 않는다. 신은 즐거움이다. 신은 무엇, 혹은 누구를 사랑하지 않는다. 신은 사랑이다.

    사랑 안에서는 그의 있음이 신이며, 의식이 신이며, 즐거움이 신이고 사랑이 신이다.


    당신의 실재(참자아)는 완벽하고 온통 기쁨이며, 온통 찬연하고 온통 행복하다. 높이 올라갈수록 참자아를 더 깊이 깨달아, 타인을 더욱 자신의 참자아로서 대하게 된다.

     

     

    -책내용-
    인간은 존재하지 않는다
    만유가 신이므로. 시간은 존재하지 않으니, 되어감도 없다.
    완벽한 완벽성 안에는 창조작용이 없다. 신밖에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으니, 신이 신을 보는 것일 뿐이다.

    신은 곧 만유이니, 신이 신을 사랑하는 것일 뿐이다.

    고요 속에서 자신이 신임을 알라! 오직 신밖에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다.

    신밖에 존재하지 않는다면 나는 곳 그것이다.(I am that)
    길에 끝에 이르면 우리는 존재하는 것은 오로지 '나'뿐임을 깨닫는다.

     

     

    최근의 나는 잠시 배가 아프다 생각하다 아 집에 있을까? 생각했다가 아니 나는 육체가 아니다 나는 무한하다. 그러니 나는 육체에 집중하지 않고 완전함에 집중하겠다 라는 사고를 가졌다. 그리고 변화 된 사실은 바깥의 있는 내내 나는 전혀 아픔의 고통을 느끼지 않았으며 오로지 내가 있는 곳에서 집중을 할 수 있었다.



    만약 내가 신이라는 사실을 알고 완전함과 무한함 지속적으로 의식한다면????? 
    집중한다면???? 당신의 삶의 의식과 당신은 깨어있음을 제대로 느낄 수 있고 당신의 현실이라고 하는 허상이 아닌 진짜 현실을 누릴 수 있게 되는 것이 아닐까?


    --불교---
    부처는 그저 각자 '깨달은자'일 뿐이라 했다.

    "색이 곧 공(허상)이고, 공(허상)이 곧 색이다." 색: 보이는 <모든 사물, 육체,감각> 모든게 공<허상>
    <공은 =무아> <무아=연기> 어디에도 주체로서의 나라는 것은 없다. 내가 없는데 윤회가 존재하겠는가?

    나는 육체와 마음도 아니며 , 나또한 허구이고, 나의 육체와 마음도 허구이다. 이세상도 아니다.

    깨달음은 개인의 것만이 아니라 과거 현재 미래 통틀어
    이 우주 현상계 전체가 지금 여기에 연기 되어 드러난 사건이다.

    *외부의 모습에 집착하면 마음이 산란해지고, 외부의 모습을 없애면 마음이 어지럽지 않게 된다.

    선 수행=> 헛된 현실에서 벗어나고, 정을 수행하여 심란한 마음을 안정시킬 것.
    선- 외부에 모습에 집착하지 않는 것. 정- 마음이 어지럽지 않은 것.


    자기 자신을 틀로 보지 말 것. 있는 그대로 근원(전체) 통째로 볼 때 그것이 가능하다.
    전체=나 이며 분리된 것이 아니다. 그러니 큰 틀에 보아야 한다.

     

     


    책 내용 -

    자동차에 자신을 싣고 돌아다닌다고 해서 자신을 그 자동차라고 부르겠습니까?

    마찬가지로 나는 이 몸을 그런 식으로 바라봅니다. (이 몸은 내가 쓰고 다니는 껍질입니다.)
    난 여러분이 만유를 받아들이지 않고 있는 것이 어리석다고 놀리고 있는 겁니다. 
    자신이 아닌 무엇이 되려면 힘이 들지만, 자신인 그것으로 있는 것은 여자가 여성으로서 있거나 남자가 남성으로서 있는 데 노력이 필요하지 않은 것과 마찬가지로 노력이 불필요합니다.

    자기 자신인 그것으로 있는 데는 아무런 노력도 필요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고집스럽게도 자신이 아닌 것이 되어 있으려고 온갖 애를 다 씁니다. 정말 멍청한 짓이지요 놓을 건 놓아 보내고, 있는 건 있게 해야 합니다.

    내가 “놓아 보내고 신께 내맡겨라”고 한 것이 그 뜻입니다. 당신이 그것입니다. 당신이 신입니다.

    놓아 보내고 당신의 참자아를 있게 하세요. 하지만 그건 엄청나게 애를 써야 할 것처럼 보입니다. 왜냐하면 당신은 자신의 비자아非自我, 곧 에고를 붙들고 있으려고 엄청나게 애를 쓰고 있으니까요. 당신이 애를 쓰고 있는 쪽은 바로 그쪽입니다. 자기 자신인 그것 참자아  으로 있는 것은 아무런 힘도 들지 않는 일입니다.

    제가 꿈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꿈꾸는 자의 관점에 다다를 수 있으면 성공한 것이지요. 
    그래서 저는 늘 ‘이건 꿈인가? 누가 이 꿈을 꾸고 있지?’ 하고 자문해왔습니다.      

    레스터    맞습니다! 그 꿈꾸는 자를 찾으세요. 더 친절하게 말하자면, 
    무한한 있음인 ‘나’가 한정된 육신이 된 꿈을 꾸고 있는 것입니다.




    꿈속에서 자신이 그 꿈속에 등장하는 하나의 한정된 육신이라고 여기면 그 상태는 꿈에서 깨기 전까지 쭉 유지됩니다. 잠에서 깨어 있는 이 현실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자신이 한정된 육신으로 존재하는 꿈을 꾸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 꿈에서 깨어나서 자신이 사실은 무한한 존재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합니다. 자신이 한정된 육신이라고 믿는 그 생각을 그쳐야 하는 것입니다. 그게 다입니다. 그 생각을 그치고 놓아 보내세요. 있는 그대로 있으세요. 내맡김이 바로 그것입니다. 지금 이 순간 자신을 내맡기면 그게 바로 그것입니다. 내가 아니라 그분. 나의 뜻이 아니라 그분의 뜻 말입니다. 이것이 내맡기는 것입니다.




     

    거울의 비춰지는 내가 나일까 물에 형상에 비친 내가 나일까  모든것은 꿈이고 그 형상에 비친 나 또한 꿈의 형태일 뿐 진짜의 나는 절대인 것이다.


    금강경 해석본에서 이르길 부처가 깨달았다는 것은 전우주가 깨달았다고 한다.
    즉 부처의 깨달음은 전 우주의 깨달음이다.
    • 부처와 예수등 깨달은 자들은 홀로 깨달아 낸 것이 아니라고 한다. 이 우주라고 하는 곳에 깨달은 자들의 (부처 전 예수 전) 그리고 부처와 예수 모두 그런 자들의 에너지들이 우주에 응축되어 있는데, 그 응축된 에너지의 도움으로 그들도 깨달음을 가진 것이며, 또다른 깨달은 자들이 나타난다면, 그러한 도움으로 인하여 깨닫는 다는 것이다. 즉 홀로 태어나 홀로 살아간 것 같이 보이는 자들이란 존재하지 않고 무한한 도움과 사랑으로 인한 깨닫는 이들이 나타나고 나타나게 된 다는 것이다. 모든지 혼자 인 것 같아 보이지만 ,우주에는 그들의 에너지들이 같이 응축되어 쌓여 있다는 것이다. 즉 깨닫는자는 그들의 도움을 받아서 더욱 더 쉽게 깨닫게 되며, 그가 깨닫는다면 그의 에너지도 우주에 응축되어 또다른 깨닫는 이를 만들어 낸다는 의미 같다.

     

     


    • <금강경 해석본 책내용>
    • 무릇 상이 있는 것은 모두 허망한 것이니 모든 상이 실체가 없음을 본다면 곧 여래를 보리라.<금강경> 현상세계의 모든 존재 모든 현상인 비상이다 모든것들이 전부 다 허망해서 실체가 없다.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것 인식되는 것을 실체라고 믿지만 사실 속고 있는 것.래서 모든 현상과 존재들이 텅 비어서 실체와 주체가 없음을 본다면 즉견여래, 그것이 곧 진리를 보는 것이다. 인간을 비롯한 모든 것들은 실체가 아니다 라는 의미. 몸과 마음이 내가 아니며 모든것은 실체가 없다의 차원에서 벗어나 그러므로 모든것은 실체이고, 진리이며, 진실 그자체라는 깨달음이 동시에 오게 된다. 

     

    •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은 절대가 꾸고 있는 꿈이다. 그런데 이것을 꿈이라고는 전혀 상상할 수가 없다. 지금 의식완벽하게 꿈속에 들어 있기 때문에 이것이 꿈이라는 것을 알아 차릴 수가 없다. 그런데 꿈을 깨고 나면 꿈속이 그 허깨비를 나라고 착각하고 고통받으며 살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  
    • 이 삶에서 벌어지는 모든 것들은 진짜가 아니다. 좋은 일도 진짜가 아니고 나쁜 일도 진짜가 아니다. 이 삶 자체가 의식 속에서 펼쳐지는 한바탕 꿈일 뿐이다. 의식이 에고에 단단히 묶여 있기 때문에 알기 어렵다. 명상하고 알아차림 해야 하는 이유는 단 하나 , 의식을 바꾸기 위해서이다.

    몸과 마음이 나라는 착각에서 벗어나도록 의식이 늘 깨어 있어야 한다.


    나는 꿈을 꾼 적이 있다.
    불이 타는 뜨거운 곳을
    모르는 아이랑 개랑 나왔는데,
    아이가 뜨거워 하는 듯 했지만, 꿈속의 '는' 하나도 뜨겁지 않음을 알았기에 내가 앞장선다고 했다.

    이꿈이 정말 웃긴 꿈인 이유는 
    개는 지나가며 쓰레기를 입으로 줍고 쓰레기통에 넣어가고 있었으며, 전혀 긴박한 상황이 아니었던 것.
    ♣그렇다 꿈속의 꿈의 '나'는 전혀 '내가 뜨겁지 않고 데이지 않음' 에 명확히 알고 있었다.

    이때의 '나'자각몽을 꾸는 '나'
    가 아니었음에도 말이다. <꿈속에서 '자각하며 나야!' 라고 하는 내가 아니었음>

    그럼에도 '나'는 알고 있었다. 데이지 않을 것이며
    이 불은 활활 타오르나 전혀 뜨겁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저는 누구일까요?

     

    우리는 그러나 이 육체

    (현실이라 착각하는 꿈속의 몸의 항상 잠을 자야 하는 이 육체말이다) 

    우리는 고통이라고 착각하고 느끼는

    이 이상한 현실에서 깨어서 제대로 보아야 하는 것이 아닐까? 

     

    '자신이 진정 누구인지 부터 기억해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우리는 왜 육체에 집착하게 되었는가?'

    '우리는 왜 유한하다고 생각하게 되었는가?'

    '우리는 대체 누구였단 말인가?'

     

     

    '왜 잠자는 몸은 자는 동안에 의식되지 않으며 꿈을 꿀때의

    나는 육체를 신경쓰지 않고 내가 내가 누구인지를 아는 것마냥 행동하는가.'

     

    '어떻게 잠자는 꿈속의 나는 이 허상의 육체를 가진 나보다 꿈 속의 꿈에서

    더 자유로울 수 있는가?'

    대체 무슨 차이가 있단 말인가!! 그만큼 내가 자유롭다는 것은 내가 누구인지 꿈 속에서는 자각하고 알고 있다는 것이 아닌가. 근데 왜 이 현실이라 착각하는 꿈속에서는 스스로가 누구인지를 모른단 말인가. 그렇다면 그것은 내가 육체에 신경쓸 수록 내가 누구인지(에고와 같아지며 참자아와 멀어지는 나)가 되어버리는게 아닌가.


    대체 우리는 누구였다는 말인가. 꿈속 신이 꾸는 꿈이라면 역시 우리는 절대자와 하나인 아니 절대인 그라는 이야기가 아닌가. 꿈속의 꿈이라 불리는 곳에서 만큼은 모든게 되고 모든것이 되는데 우리는 왜 우리가
    모든것이 였다는 것을 망각한체로 육체라 착각하며 살아가고 있다는 것인가. 그것은 정말 이상하기 짝이 없는 일이다.


     

    라고 하는 자는 그럼 절대 참자아 라는 존재와 같다는 이야기라고 밖에 볼 수가 없지 않은가.
    그렇다면 우리는 무한한 존재가 아닌가. 아니 무한한 존재라고 밖에 볼 수가 없다.
    우리는 무한한 참자아 신과 하나이기 때문이다. 그것에서 분리된 적이 없는데 어찌 우리가 분리된 존재인
    육체라고 자신을 이야기 할 수 있겠는가.

    이렇게 꿈속의 꿈에서는 자유로운데 그렇다면 이곳에서 우리가 깨어난다는 것은 자유로움과 하나가 된다 무한한 신이 신임을 알고 삶을 살아간다는 것은 그만큼 자유롭다 자유로움과 하나인 우리 그 자체 무한이 된다는 것을 깨닫고 살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삶이 아름다움을 가득 차있었는지를 안다는 것이 아닌가.

    그러면 딸기와 신 믿음과 앎을 제대로 알게 된다는 것이 아닌가.

    우리는 딸기를 믿는 것이 아니라 딸기의 존재를 알고 느끼고 생각하고 보고 모든 것을 안다.
    그러니 우리는 신이라는 것을 믿는다는게 아니라

    *우리가 신이었음을 안다는것이 우리가 실로 알아야 할 사실이라는 것이다.

    이 레몬과 당신은 무슨차이인가. 레몬은 레몬이 무엇인지를 안다. 그런데 우리는 우리가 무엇이었는지 누구였는지를 망각하고 있지는 않은가. 나와 이 레몬 또한 분별이 없고 그것이 나인것처럼 내가 신과 하나라는 사실을 우리는 알아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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