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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이 말해 준 것 2구매한 서적 내용 정리 2020. 3. 22. 20:39
자유자유 ★모든 최악의 시나리오들은 '신'이 만들어서 우리로 하여금 고통받게 하는 사건과 체험들이 아니다.
그것들은 우리가 진정으로 누구이고 신이 진정으로 누구이고 무엇이며 삶이 진정으로 어떻게 작용하는지에 대한
가장 높고 가장 큰 현실을 믿기를 완전히 거부한 대신 우리가 연기하고 있는 허구의 '대본'을 믿음으로써 나온 것이며,
우리가 만들어서 우리가 고통받고 있는 것이다.
->이 건에 대해서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잘못된 창조. 잘못된 인식으로 인하여 만들어진 고통.
진정 우리가 바라봐야 하는 것은 '사랑과 용서 축복 행복' 이러한 신성성은 아닐까요.
그렇다면 우리가 '잘못된 인식으로 바라본 현실의 상황을'-> 구체적으로 변화시켜서
'바라보고 싶은 현실 사랑으로 가득찬 세상' 으로 바라보면 세상은 그렇게 변화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신께서는 아마 우리 인간을 사랑으로 바라봐주시고 돌봐주시고 계시기에, 세상의 모든 것의 선택을
인간에게 주신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너의 선택을 존중한다. 사랑하기 때문에.'
그렇기에 우리에게 '특별함'을 지닌 예수와 부처를 통하여 깨달음과 너네 또한 그들과 별반 다르지 않은
모두가 '특별함'을 가진 존재라는 사실을 깨닫게 해주시려고 했던 것은 아닐까요?
세상을 사랑으로 바라보려고 노력하니, 사랑스러움이 가득하게 보입니다.
신이 세상을, 인간을 정말 사랑하시고 보살펴주시는 구나. 또한 보이지 않는 존재이지만 천사들 또한
최선을 다해서 인간세상에서 배울 수 있도록, 깨달을 수 있도록 사랑을 행복을 경험할 수 있도록 노력해주시는구나.
그렇다면 우리는 우리의 세상을 사랑으로 바라보는 시선을 갖고 세상에게 돌려줘야 하는 것은 아닐까요?
'틀린 창조' 그렇다면 '사랑 창조'로 시선만 바꿔준다면, 세상은 사랑으로 가득차지 않을까 싶습니다.
★우리는 마치 그 '연극'이 실제인 것처럼 행동한다. 우리는 역할 연기를 아주 잘해서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토끼 굴속에 빠졌다. 그곳에서는 미친 모자 장수가 밑바닥 없는 찻잔 속에 차를 계속 들이 붓는다.
'그러한' 것은 그렇지 않으며 '그렇지 않은 것'이 그러하다고 주장하면서, 그리고 우리는 마치 환상이 실제인 것처럼
행동했기 때문에 신이 영원히 지속되는 천벌로 우리를 벌할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진실은 이것이다. 우리는 우리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알지 못한다.
집단의식 수준이 계속 확장되고는 있지만, 우리 대다수가 자신이 누구인지, 우리가 왜 이곳에 있는지,
삶이라 불리는 체험이 대체 무엇인지를 분명히 이해하는 지점까지 도달하지는 못했다.
우리는 소수의 사람이 삶에 대한 다른 생각을 제시하는 것조차 못하게 한다.
신에 대한 다른 생각은 말할 것도 없다. 그 사람들을 이단자라고 노골적으로 처벌하지는 않더라도
몽상가나 미치광이라고 소외시키지 않으면서.
진실은 물론 지옥이란 장소가 없다는 것이다. 물론 영원한 천벌도 존재하지 않는다.
왜 그런가? 우리는 맥락의 장이 허용하는 한도 안에서만 삶을 경험하고 있기 때문이다.
신은 신성 자신의 무한한 범위 속에 포함된 모든 가능성을 이용해 자기를 크고 장엄하게 표현하며
스스로를 경험을 통해 알고 싶어 하며, 그 표현 속에서 당신의 자각이 커지기를 바란다.
★ 너무도 전지전능하여 당신의 영혼을 위한 전투에서 패배할 수 있는 신이 있다고 우리는 정말로 믿는가?
악마가 승리하고 누군가가 지옥으로 보내질 때마다 신이 "음! 승리 몇 번. 패배 몇 번이군."
하고 말한다는 것이 우리의 이해인가?
어느 쪽이 당신의 마음에 평화를 주는것이며, 특별하고 경이로운 방식으로 삶을 표현하려는 바람을 더 많이 가져오는 것 같은가?
이 중 어느 것이 당신 가슴에 더 많은 사랑을 가져오고, 당신 삶에 더 많은 설렘을 가져오고, 당신 경험에 더 많은 기쁨을 가져오며,
당신이 마주치는 모든 것에 더 많은 경이를 가져오는가?
당신이라면 어느 신을 선택하겠는가? 어제의신? 오늘의 신? 내일의 신?
내일의 신은 누구에게도 신을 믿으라고 결코 요구하지 않을 것이다.
내일의 신은 하나의 초월적 존재가 아니라 삶이라 불리는 특별한 과정일 것이다.
내일의 신은 자신을 섬기라고 요청하지 않을 것이며 모든 삶을 섬기는 자가 될 것이다.
'자신의 세계관에 비추어 부적절한 일을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옮음'은 우리가 옳다고 말하는 것이며,
'그름' 역시 그러하다. 무엇이 '선'이고 무엇이 '악'인지, 무엇이 '적절하고' 무엇이 '적절하지 않은지.' ,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지' 선언하는 것은 우리이다.
=> 특별한 답은 이것이다. 신은 이점에 있어 우리에게 완벽한 자유를 주었으며, 우리가 바라는 대로 스스로의 현실을 만들고 체험하기를 원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모든 행동이 자기 확인의 행동이고, 모든 선택이 개별적 의지의 표현이다. 우리에게는 자유 의지가 주어졌다.
이것이 신의 의도이다. 신은 모든 지각 있는 존재와 모든 생명체가 생명 형태의 의식이 허락하는 신성의 가장 높은 차원을 자유롭게 표현하고 체험할 갖아 큰 기회를 갖길 바라기 때문이다.
우리가 명령대로, 들은대로 행동한다면-> 기회는 인간에게 주어지지 않을 것이다.
★신성 자체의 본성이 완전한 자유와 완벽한 힘, 절대적 권위이기 때문이며, 만일 인간이 신성을 체험하고 싶다면 똑같은 무한한 자유와 능력을 체험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단순히 명령에 따르고 지시에 응답하는 것은 결코 신성과 똑같지 않을 것이다.
오직 논리만이 우리에게 이렇게 말한다. ** 모든 것에 있어 신이 우리에게 자유 의지를 주었다고
따라서 누군가 자신의 행동이 '적절'하다고 생각하거나 그렇게 만들지 여부를 결정하는 것은 그 사람의 세계관임을 우리는 알 수 있다. 우리가 판단할 때 부적절하게 행동하는 사람/집단과 함께 있을 때 우리가 가진 기회는 이것이다.
** 그사람이나 그사람들이 자신의 세계관을 다시 생각하고 바꾸도록 초대하는 것.
그들의 행동을 뒷받침 하는것이 이것. 세계관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비난하고, 궁금해하지 않고 비난한다. *역설적인 것은 그들이 종종 그 생각을 우리로부터 들었다는 점이다.
결국에 책에서 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신은 인간을 존중하고 사랑하기에, 자율의지. 자유의지 선택을 주었으며, 옳다 그르다 하는 것은
각자의 견해와 의지가 담긴 것이지, 그곳에는 신의 옳다 틀리다 하는 견해가 아닌 것 같습니다.개개인의 선택과 행동이 다른 것 또한, 인간이 동물과는, 식물과는 다르게 자율의지를 갖고 행동하기 때문이며, 그에 따른 경험이 생기는 것 또한 본인의 자율적 행동에 기반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물론 너무나도 틀린 행동이 있다. 그러면 비난해야 하는가에 대해서 이 책에서 하고자 한 것은,
그의 행동을 비난하고 너는 틀렸어!가 아니라, 옳은 행동 방식으로 바꾸도록 돕는 것. 그렇게 사랑과 신성을 선택하도록 선택지를 1,2,3,4에서 +5를 더 추가해주고 +6을 더 추가하고 바뀔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것이라는 의미는 아닐까 저는 생각해봤습니다.
해석은 다 개인마다 다를 수 있기에 이 부분은 각자의 생각대로 의미가 달라질 수 있겠습니다.
인간의 관점으로는 분명히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영적인 의미에서는 이 세상에 희생자도 악한도 없다.
게다가 당신은 신성하기 때문에 당신의 의지에 반해서는 아무 일도 일어날 수 없다.
희생자 및 악함도 없다라는 것은 제가 쓴 기적수업내용 일화들을 읽어보시면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요근래 집에서 책을 읽어버려서 껄껄... 아무튼 찾게되면 마저 또 내용을 올리겠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예수 같은 사람은 한 명도 없었고 앞으로도 결코 없을 것이다." 라고 말해 왔다.
그것은 예수의 기적적인 행동을 따라할 능력이 없어 보이는 우리의 능력을 양립시키기 위한 수단이었다.
하지만 " 왜 그렇게 놀라느냐? 이런 것들과 더 많은 것들을 너희 또한 할 수 있다." 라고 말한 것은 예수 자신이었다.
=> 관련된 내용은 오늘 먼저 쓴 신이 말해준 것 편에 제가 개인적인 생각을 더 쓴 것이 있습니다.
예수는 " 이런 것들과 더 많은 것들을 너희 또한 할 수 있다." 다만 우리가 그의 말을 믿지 못했을 뿐.
아마 해석이 틀리게 잘못 와전된 번역처럼..... ... 번역가를 잘못 썼더니 의미가 초월번역이 되어버려서
좋은 의미로 더 좋은 멋진 의미가 있을 수 있겠지만..... 잘못하면 완전 다른 의미가 되어버리는....
예를 들어서 cute 라는 의미를 일본에선 최고로 좋은 의미 귀여워가 예뻐 pretty보다 더 자주 쓰이고
더 좋은 의미로 좋아하는 느낌이라면, 한국에서는 cute는 거의 동물이나, 아기등 귀여운 물론 사람에게도 자주 쓰이고 좋은의미다. 보통은 pretty 쪽을 선호하며 의미의 느낌이 두 나라가 전혀 다른것 처럼. 물론 둘다 두나라다 귀엽고 예쁘고 다 좋은의미라..
일본 cute> pretty. 한국 cute< pretty
예시로는 적절치 않은것같지만...~~~아무튼간 의미 전달을 누가 하느냐에 따라서 완전히 달라진다.
아무튼간 해석하는 놈이 그래 이것은 신만 특별해... 라고 해석해버려서 .............의미가 바뀐것 같다.
우리는 다만 그를 믿지 않았다. 하지만 그렇게 할 날이 올 것이다. 그날은 예수가 자신의 '실제 정체성'을 받아들인 그때처럼
우리도 우리의 '실제 정체성'을 받아들이는 날일 것이다.
우리가 신과 하나이고, 그리스도와 하나이며, 서로가*(인간 모두) 하나이고,모든 삶과 하나라는 현실을 받아들이는 때가 그때일 것이다.
예수는 자신이 어떤 것의 희생자도 아님을 이해했다. 또한 자신에게 악을 저지르는 악한도 없음을 이해했다.
예수는 자신에게 아무 일도 일어날 수 없으며 자신을 통해 모든일이 일어나고 있음을 알았다. 이것이 지금까지 살았고 앞으로도 살아갈 모든 인간에 대해서도 사실임을 그는 알았다. 예수의 특별한 임무는 그것을 우리에게 보여 주는 것이었다.(예수는 실체가 몸이 아닌, 영체임을 안다. 그러므로 이와 같이 현실에서 일어난 것처럼 보이는
희생 당한 것처럼 보이는 십자가에 박힌 상황 피를 흘린 상황등) 은 환상속에서 일어난 것임을 아는 것이다.
(실제의 영체인 혼의 상태는 아주 건강하고 전혀 아프지 않고, 환상속에서 일어난 것은 깨어나면 아무것도 아님을 안다.)
예시) Vr이나 컴퓨터 게임을 했다. 캐릭터가 몹에 의하여 에너지가 40%남은 상태. 이 상태의 캐릭터는 피를 흘린다.
=게임하는 사람에게 피가 나오나. 그 게임하는 사람이 아픈가? 전혀 아니다. 그저 게임이다. 실제의 뒤의 '나는' 전혀 아프지 않다.
간략하게 예시로 들면 저러하며, 꿈에서 고통을 당했다. 아픈가? 실제의 나는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았음.
환상 및 환각에 고통이 보였으나, 그저 환상인것을 눈치채자, 아무런 고통도 없는 만화를 봐보면 이해가 된다.너의 소원은 무엇이니?
내일의 신이란
○ 내일의 신은 누구에게도 신을 믿으라고 결코 요구하지 않을 것.
○내일의 신은 성별도 크기도 모양도 색도 없으며 살아 있는 개별 존재의 어떤 특징도 지니지 않을 것.
○내일의 신은 모든 사람과 항상 이야기할 것.
○내일의 신은 어떤 것과도 분리되어 있지 않다. 내일의 신은 모든 곳에 존재하고, 모든 것 속의 모든것이며, 알파이자 오메가이고, 시작이자 끝이며, 지금까지 존재했고 지금도 존재하며 앞으로도 존재할 모든 것의 전체 합이다.
○내일의 신은 하나의 초월적 존재가 아니라 삶이라 불리는 특별한 과정일 것이다.
○내일의 신은 항상 변화할 것이다.
○내일의 신은 필요가 없을 것이다.
○내일의 신은 자신을 섬기라고 요청하지 않을 것이며 모든 삶을 섬기는 자가 될 것이다.
○내일의 신은 무조건적으로 사랑하며, 심판하지 않고, 차별하지 않으며, 단죄하지 않을 것이다.'구매한 서적 내용 정리'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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